클럽 운영자: 세계사 일화선원 회원: 18명 개설일: 2007-02-12 방문수: 9,524명
회원상태: 손님
내 클럽 바로가기
조사선의 세계정신

최신목록 / 1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성인의 본심과 종교 -금오  worldzen 2007-03-13
12:51
455
도인에게 무슨 한이 있겠는가? 그러나 중생세계에서 이 좋은 법을 섭수하지 못할 때 아프다. 오직 주고 싶은 것밖에 없는데 받아주질 아니 할 때 그렇게 서운하고 외로울 수 없다. 꼭 필요한 법인데도 오히려 경멸과 조소와 외면을 던지는 세상이 아닌가? 이 인간세계는 종교를 의논하는 데에도 미묘한 자아의식(ego)이 작용한다.

'기독교와 불교', '불교와 기독교'의 두 제목 중 어떤 것이 옳은가? 내가 불교인이거나 기독교인이라는 상을 지니고 있다면 분명히 선후를 비교한 끝에 만족과 불만이 존재할 것이다.

보라, 세상의 엄청난 묵인사항이 '나는 무엇이다'라는 명제이다. '내가 무엇이다', '너는 무엇이다'라는 구분의 아상(我想)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유발시킨다.
작게는 학벌, 지방색, 크게는 국가주의로 자기를 쌓아놓고 서로 충돌하고는 서로 곤혹에 빠진다. 불교인 입에서 '저 친구 ○○도야', '○○도야' 서슴없이 나오는 분리의식의 독산 구업은 없는가? '도인은 주로 ○○도에서 나온대' 이런식 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인 흑백인종 국가간의 분리된 사상을 떨구어주어야 할 불제자가 이렇다면, 이 지구촌의 망상은 누가 책임지고 없애줄 것인가? 설사 이 따위 것들이 다 없어진다해도 아마 절대자를 빙자한 종교적 자아의식은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부처님', '우리 예수님' 말하자면 우리들과 너희들은 좀 다르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천당의 쾌락을 최고로 아는 인천교(인천교)인 너희 교리로써 어찌 우리 최상승의 대승도리를 알겠는가?' '너희는 기껏해야 인간의 깨달음을 논하지만 우리는 창조주 신의 자손이다. 어찌 감히 동등한 위치에 서려 하는가?' 이런 논쟁으로 들끓는 지구촌의 편견된 종교의식….

나를 확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신의 이름 혹은 절대자 교주 이름을 빙자하여 우월해지고 성스러워지고 싶은 자아(ego) '나는 불교인 너는 기독교인'의 분리가 없는 마음이 곧 세존의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이거늘.
'나는 예수님의 자손' '너?더러운 죄인'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 곧 창세기 금단의 과일 '선악과'의 교훈이거늘-. 언제부터 이 지구촌은 선과 악, 미와 추, 우월과 열등을 나누어 놓고 교활한 악업의 삿된 소견이 난무했는가?

혜암선사께서 하루는 성경을 읽으시더니 탄복을 하셨다.
'나로 인하지 않고는 하늘나라 들어 갈 수 없다는 '나'와, 세존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나'는 결코 둘이 아니로구나'

대성인이신 예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는 예수라는 명사에 끄달려 그 이름으로 인하여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세상을 한탄하셨다. 즉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과 같은 글을 쓰셨는데 제목이 [불교와 기독교의 동일점]이다. 자신의 저서에 이 글이 실려있는데 자신의 저작인데도 실로 이 글이 실리기까지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난관이 많았다. 어째서일까? 주위의 엄청난 반대로 1년 6개월 간을 보류하고 있을 즈음 노선사의 진리에 대한 솔직한 견해의 확신감에 찬 추진으로 결국은 실리게 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참다은 진리의 천명에 그 취지가 있다.

진리에는 세상의 아전인수격인 교만이 용납되지 않는다. 도인의 안목이 너무도 천진하고 순수하므로 세간의 불협화음을 무릅쓰고 천하에 이 사실을 공표하고 싶어 하셨다. 노선사의 이 간절한 부탁을 받고 이 신문사 저 신문사 쫓아다녔던 시자 스님의 말씀을 듣고 필자는 콧등이 시큰했다. 어째서 세상은 이 글을 용납하지 못했을까? 모 신문사 양반 말씀이 '이런 글 실리면 양쪽에서 욕먹습니다'라고 하더란다. 양쪽이란 어느어느 곳을 말하겠는가? 참으로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선각자의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다.
이 양쪽으로 인식되어버린 종교의 분리는 이제 세속인들에게 상식화되어 버렸다. 흑백논리의 전쟁터인 이 종교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었을 때의 일화를 보자. 어떤 사람이 신약성경을 한 선사(禪師)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몇 귀절을 읽었는데 '들에 피어 있는 백합을 보라, 그들은 내일을 위하여 생각하거나 수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그토록 아름답다. 솔로몬의 영화라 할지라도 그토록 아름답지 못하였느니라.'
그가 그 선사에게 이 귀절을 읽자 '그만! 누가 뭐라고 하여도 그 게송을 읊은 사람은 선각자이다'하고 단호하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위대한 통찰은 양변을 떠난 깨달을 자만이 서로 미소지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서는 외로운 견해가 아닌가? '세상이 비웃지 않는 법은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옛 선사의 말씀이 증명하는 이 세대여, 부끄럽지 아니한가?

지난해 오월 노선사의 입적 소식을 듣자마자 필자는 모 신문사로 찾아가서 또 한번 간절히 부탁해 보았다. 큰스님의 유고를 일간지에 실어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거절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부딪쳤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오늘의 이 페이지를 스승님의 영전에 바치오니 이제는 한을 좀 푸시옵소서….
민족주의적인 선민의식을 바탕으로한 이스라엘인의 배타적인 종교성을 전세계적으로 확대하는 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뒤따랐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둘 곳도 없다'비통한 말 한마디를 던졌던 예수님----
선각자의 외로움은 예나 이제나 이와같다. 무심코 선각자의 간절하신 법문에 못질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스승은 외로이 서 계셨다. 그리고는 가셨다. 이제는 그 법만이 남아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를 다버리고 나를 따르면 천국이 너의 것이다'하였다.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예수 자신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나'를 따르라는 말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것을 물으면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이라 하니,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본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세존의 '천상천하에 나만이 홀로 높다'는 말씀도 각자의 '나'를 가리킨 것이니, 여기에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상법(事相法)으로 말하더라고 밖으로 쓴 죽 나타나고, 안으로 거두운 즉 감추는지라, 밖으로 공경하는 것을 들어서 안으로는 참된 성품을 밝히고, 나의 성품과 밖의 형상이 서로 응함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불상(佛像)을 숭상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이 이와 같은 도리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우상은 배척해야 된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식밖의 생각이다.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인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십자가는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성격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부처님도 예수처럼 믿을 것이요,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부처니 말씀의 근본 뜻을 알고 믿으면, 예수님도 부처님처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한 가정에서도 부모는 불교도요 자녀는 기독교도라 해서 그 의견이 서로 같지 않음을 흔히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로 알고 바로 믿으면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도 불교를 믿는 부모에게 효도를 달리 할 수 없을 것이요, 또 불교를 믿는 부모들도 기독교를 믿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믿는 진리(기독교와 불교)가 겉으로는 다르지마는, 그것은 마치 물을 파도를 여의지 아니하고, 파도는 물을 여의지 아니한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이와 같이 모든 종교의 진리가 하나임을 알아야 하며, 그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남의 옳지 못한 말만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비유를 보면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알 것이다. 가령 달 밝은 밤에 접시,사발,동이,항아리 등 무수한 그릇에 물을 떠놓고 보면, 그 그릇마다 달은 다 비추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니 기독교니 천주교니 하는 것 등은 곧 접시달·사발달·항아리달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즉 그 그릇은 각기 다르나 그 달은 같은 달인 것이다. 보라, 청천에 떠 있는 달은 우주에 오직 한 몸만 비추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알면, 종교라 원래 하나임을 깨끗한 정신으로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사회에서 철학이 어떠니, 심리학이 어떠니, 인생관이 어떠니 하고 떠들며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 남의 흉내만 내는 것이다. 참으로 위에 것을 달관하여 인생이란 것을 철저하게 타파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다 자기가 과거에 어디에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천만 번 계교(計較)하고 사량(思量)하여 이르더라도, 그것은 다 뜨거운 불 위의 한 점〔一點〕눈〔雪〕이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글이야 한 자도 모르더라도, 내가 전생에 어디 있다가 이 세상에 왔는지, 그 온 곳을 알아야 한다. 그 온 곳을 진실로 밝게 알면, 따라서 내생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참된 인생관이 성립되는 것이고 완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게 밝았으니
다만 한 구덩이에서 면하지 못하고 묻히면
몸 가운데 푸른 눈알이 있음을 알지 못하리라.
金仙耶蘇本目面
人前各自强惺惺
一坑未免但埋却
不知身在眼子靑
[혜암 禪關法要]
-금오-
덧글 (총 0 개)
loading...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 8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활용하라  worldzen 07.03.27 410
7 7 인류를 파멸에서 구제하는것은 조사선의 소임이다  worldzen 07.03.26 365
6 6 조사선은 인류위기의 돌파구인가?  worldzen 07.03.23 374
5 5 해외포교의 문제점(펌-2)  worldzen 07.03.18 511
4 4 인류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kimchicut.. 07.03.17 359
3 3 해외포교의 문제점 (펌)  worldzen 07.03.17 404
2 2 성인의 본심과 종교 -금오  worldzen 07.03.13 455
1 1 世界일화의 근본뜻을 알라  worldzen 07.03.04 668
  1  
 



Copyright © HeyKorean, Inc. All Rights Reserved.
USA
460 Park Ave. #430 New York, NY 1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