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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토스산  worldzen 2007-03-08
10:01
916
그리스 정교의 성지 아토스산을 순례하다…무소유의 원칙을 지키는 영혼의 안식처


10월 중순. 그리스 북쪽은 제법 쌀쌀했으며 빗방울마저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불길한 날씨에도 아토스산으로 향하는 순례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새벽 5시나 됐을까. 아테네에서 밤새 달려온 버스가 데살로니카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그동안 버스를 기다려온 수십명의 순례자와 수도승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모두 잠든 새벽녘, 아토스산과 세계를 이어주는 항구인 우라노폴리스를 향해 만원버스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렸다.

우라노폴리스는 아토스산과 세상을 잇는 항구로, 아토스산으로 들어가는 출입허가서를 발급하는 행정사무소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매일 아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날 아침에도 거의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허가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경찰들까지 나와 질서를 잡았다. 가히 폭발적인 순례행렬이었다.



사진/ 아토스산의 대표적인 수도원 가운데 하나인 시모노페트라 수도원. 해적들의 약탈에 대비해 철옹성을 구축해 놓았다.


가축도 암컷은 안된다


2년 전만 해도 누구도 이런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 더구나 1960~70년대 아토스산은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았고, 젊은 수도승들이 재충원되지 않아 수도원들이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외부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 아침 아토스산을 향하는 사람들 중 절반은 정교회의 수도승이었고 나머지는 일반인이었다. 수도승 가운데는 귀가 중인 아토스산 출신 수도승이나 러시아와 세르비아 등지에서 순례길에 오른 수도승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가난한 자와 부자, 그리스인과 외국인, 젊은이와 노인 등 갖가지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된 순례자들은 오직 아토스산을 향해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서 빠진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여성이다. 아토스산은 남성만 입산할 수 있다. 1200년 전 아토스산에 수도승들이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이곳은 여성에게 금지구역이 돼버렸다. 1060년에는 비잔틴의 콘스탄틴 황제의 칙령으로 아예 아토스산을 ‘여성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가축들까지 암컷과 수컷을 나눠 암컷의 반입을 금지한다. 단, 쥐를 통해 발생할지 모르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암고양이는 반입이 허용됐다. 이 때문에 유럽의 여성단체들이 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지만 아토스산은 침묵하고 있다.

줄 선 사람들 중에는 정교회와는 상관없는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섞여 있다. 허가서 발급을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은 한결같이 비장해 보였다. 이들은 찌든 세상살이에서 잠시 탈출하기 위해, 또는 심각한 문제를 신앙의 힘으로 풀기 위해 왔다. 허가서를 손에 쥔 이들은 마치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양 얼굴 표정이 밝게 바뀐다. 그리스나 러시아 등 정교회 국가의 정교회 신도에게는 출입허가서가 쉽게 발급되지만, 가톨릭이나 신교 국가 국민들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신상서류들부터 사유서까지 내야 하며, 인터뷰도 있어 대부분은 중도에서 포기하고 만다.



사진/ 아토스의 수도 카리에스 거리. 젊은 수도승이 선배 수도승에게 예를 표시하고 있다.



쇠퇴와 융성을 반복한 역사


아토스산은 반도의 고립된 지형으로 문명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수도원들이 들어서기 오래 전부터 이곳은 수도승들 사이에 유명했다. 8세기 페트로스 신부가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뒤 963년에는 비잔틴 황제 포카스의 지원으로 최초 수도원의 전신인 ‘라브라’가 여기에 세워졌다. 그 뒤 수도원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수도원들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국 왕실의 보고로서 왕들이 보물을 맡겨놓기도 했다. 보물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새나가면서 해적이 출몰하기도 했고, 심지어 수도원을 불태우고 보물을 약탈해가는 일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수도원들은 모두 중세 성처럼 높은 성곽을 쌓아 해적의 침략에 대비했다.

어렵사리 허가를 얻어 아토스산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자 순례객을 환영하는 듯, 한 무리의 갈매기가 배를 감싸면서 날아다녔다. 선상 갑판 한 모퉁이에는 러시아에서 온 수도승과 순례자들이 모여 앉아 갈매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토스산에는 20개의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대규모로 지어진 러시아 수도원은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 수도원은 러시아 제정 당시 차르가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면서 아토스산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이 되었다. 모스크바의 세르기에프 수도원에서 왔다는 스테판 신부는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한 뒤 혼란과 무질서가 러시아를 지배해왔으나, 요즘은 젊은이들이 정치에 식상했는지 교회나 수도원을 찾는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토스산 수도원들은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으나 언제나 외부 변화에 민감했다. 11세기 승려 수가 거의 7천명에서 1만명에 이르렀던 시기도 있었다. 터키는 당시 정교회 본산이던 아토스산을 싹쓸이하기 위해 수도승에게 세금을 물리기 시작했고 수도승의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졌다. 승려들이 더 머물 수 없어 떠나가자 아토스산은 텅 비게 됐다. 하지만 1921년 11월5일 아토스산이 그리스 영토로 편입되자 이곳에는 1만명 정도의 수도승들이 기거했다. 상황이 반전돼 아토스산의 수도원 운동 1000돌 기념 해인 1963년에는 수도승 수가 다시 초라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지식인 출신 수도승들이 몰려 2천명의 수도승들이 수행에 전진하고 있다.

배가 다프니에서 닿자 그레고리우 수도원으로 가는 배로 갈아탔다. 그레고리우 수도원 소속의 한 젊은 신부와 몇명의 젊은이들이 동행했다. 이들은 모두 마약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도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뾰족한 수가 없자 최후 수단으로 수도원에 살면서 신앙의 힘과 공동체 생활로 완치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었다. 모두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었는데 이들은 헤로인 중독에 빠져 있다고 했다. 대개 14살에 마약을 시작해 16살에 헤로인을 투약하고 19살에 완전 중독에 도달했다. 마약환자를 돌보고 있는 바실리오스 신부는 “사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마약 프로그램의 성공 확률이 단지 10%인 데 반해, 수도원에 들어온 마약환자들의 경우 약 70%가 완전히 쾌유돼 나가는 높은 치료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도원에서는 마약환자들이 몰려오는 것을 꺼리는 눈치였다. 현재 그레고리우 수도원에는 20명 남짓한 마약중독자들이 머물고 있지만 그 수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사진/ 아토스산에는 신앙의 힘으로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도원 생활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마약중독 치료 위해 젊은이들 몰려


이곳에 들어온 환자들이 모두 기꺼이 견디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일주일 만에, 어떤 이는 한달 만에 도망치다시피 수도원을 떠난다. 이곳에서 9개월을 지냈다는 야니스(26)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마약중독을 극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스타브로스(28)는 13개월을 이곳에서 보낸 뒤 이제 거의 치유가 끝난 상태여서 바깥 세상으로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약중독자들에게는 신앙심이 치료약이었다. ‘금욕과 청빈, 겸손’의 기치를 내건 수도원 공동체의 삶도 수도원마다 다르다. 수도승들은 저녁식사 뒤 잠자리에 들어 새벽 2시에 교회에서 예배를 한다. 예배는 아침 직전까지 이어지고 저녁 한 시간 정도 추가 예배가 있다. 식사는 수도원장인 아봇이 탁자를 치면 시작하고 수도승 한명이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성경을 읽는다. 식사 중에는 대화는 금물이고, 그저 조용히 성경 낭독을 들어야 한다. 음식은 채소와 빵, 치즈가 일상적인 식단이다. 육식은 금지돼 있고 생선은 아주 드물게 나온다. 그리고 어떤 수도원에서는 수도승이 비정교회 신자와 얘기하는 것은 물론 식사도 함께 하지 않는다. 필자도 수도원 4곳을 들렀으나 2곳에서는 혼자 식사를 해야 했다.

아토스산에는 행정을 총괄하는 수도원 공화국의 수도인 ‘카리예스’라 부르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는 수도원과 암자에서 운영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몇 시간이나 걸리는 산길을 걸어 빵을 사기 위해 온 수도승도 보였다. 이곳에는 수도승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도 눈에 띈다. 아토스산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카리예스는 전통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총대주교 관할 아래에 있다.


전기와 인터넷 도입에 논란도


하지만 총대주교쪽과 수도원들 사이에 아주 심각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양쪽간 충돌은 벌써 3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30년 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바티칸 교황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에 에스피메누 수도원쪽은 총대주교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총대주교쪽에서는 수도원 원장을 비롯해 117명 수도승들을 모두 파문하고 아토스산 추방을 명했다. 이에 불복하는 수도승들은 강제로 끌어내렸다. 지난 1월에는 수도원에 공급되는 전기와 물, 전화선을 끊어버려 이에 항의하는 정교회 신자들과 수녀들까지 합세한 대규모 시위가 우라노폴리스에서 벌어졌다. 이 문제는 지금 그리스 고등법원 재판에 계류 중이다. 본질은 전통을 고수하려는 쪽과 변화를 수용하려는 쪽과의 충돌이다.

이와 유사한 일로 과거 아토스산에 ‘전기’를 도입할 때도 한바탕 큰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온다면 수행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깃불은 밝혀졌고, 지금은 컴퓨터도 들어왔다. 어떤 수도원에서는 인터넷까지 즐기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효율적 관리를 중시하는 쪽과 컴퓨터와 인터넷은 영성을 해친다는 입장의 충돌이다. 시모노페트라 수도원의 마카리우스 신부와 같이 “컴퓨터를 이용하더라도 세상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는 등 좀더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는 절충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있다.

아토스산에서 이런 충돌들은 아직까지는 잔잔한 연못의 파문 정도일 뿐이다. 지금도 무소유 원칙을 따르면서 평화찾기를 원하는 많은 수도승들이 이름도 없이 초야에 묻혀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아토스산은 정교회 영혼의 안식처로 존중받고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초기 수도승들의 정신은 아토산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교훈이다.


아토스산(그리스)= 글 · 사진 한겨레 21 하영식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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